Tessars, Triotars, and Xenars
1929년부터 1952년 초까지 생산된 모든 Rollei TLR에는 1893년의 Cooke Triplet에서 파생된 3요소 렌즈 또는 1902년의 최초의 Tessar를 기반으로 하는 4요소 렌즈가 장착되었다. 3요소 렌즈가 먼저 개발되었으며, Tessar는 후면 구성 요소가 2장의 렌즈로 분리되어 있을 뿐 전체적인 렌즈 디자인은 3요소 렌즈와 동일하기 때문에 3요소 렌즈에서 4요소 렌즈가 탄생했다고 추정하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3요소 렌즈는 T.Cooke & Sons로 알려진 York 회사에 고용된 광학 디자이너 H.Dennis Taylor의 아이디어로 개발된다. 1893년, Taylor는 오랜 역사의 크라운 렌즈(산화 납이 아닌 다른 조성을 지닌 유리. 굴절률이 작고 분산률이 낮은 특징)와 플린트 렌즈(산화납유리, 또는 부싯돌 유리. 높은 광채와 투명도, 높은 굴절률이 특징인 무겁고 튼튼한 유리의 종류)로 지금까지 시도 되지 않았던 디자인을 고안해냈다. 그는 같은 배율의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가져다가 볼록렌즈를 둘로 나누어 중앙의 오목렌즈의 양 반대쪽에 각각 장착했다. 중앙에 위치한 오목렌즈의 강도 때문에 가공 및 생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하였으며 얼마지나지 않아 3요소의 렌즈는 적당한 가격대의 카메라 렌즈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Tessar 렌즈는 3요소 렌즈와는 다른 배경에서 개발되었다. 1880년대 이전에 렌즈 제조업체는 '오래된 크라운-플린트 라인'으로 알려진 약 1.5에서 1.7 사이의 굴절률을 가진 광학 유리로 제한되었다. 이 유리의 분산력, 즉 스펙트럼의 빨간색 끝에서 빛의 굴절과 파란색 끝에서 더 큰 굴절 사이의 변화는 굴절률과 함께 상승했다. 즉, 하단의 크라운 유리는 분산력이 낮은 반면, 상단의 플린트 유리는 분산력이 더 컸다. 굴절률과 분산력 사이의 이러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렌즈 설계자는 분산에 따른 최악의 영향을 극복할 수 있었다. 크라운 유리(낮은 분산률)로 된 강한 볼록렌즈와 플린트 유리(높은 분산률)로 된 약한 오목렌즈를 접합함으로써, 한 렌즈의 분산을 다른 렌즈로 상쇄함과 동시에 매우 넓게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색상 광선을 초점 평면에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크로맷(Acromat)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이중구조의 역사는 17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중구조 렌즈는 예나(Jena)에서 일하던 두 사람 - Carl Zeiss가 고용한 물리학 교수 Ernst Abbe(1840-1905)와 유리 제작자인 Otto Schott 사이의 협력으로 인하여 1880년대에 비약적으로 성능이 발전하게 된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렌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굴절률은 적당히 높지만 분산률은 낮은 바륨 크라운 렌즈였다. 고굴절/저분산 크라운 렌즈(예를 들어 바륨 크라운 렌즈)와 저굴절 플린트 렌즈로 구성된 아크로맷 렌즈는 새로운 아크로맷 렌즈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렌즈 설계자는 필드를 편평하게 하려는 이전의 노력을 방해하는 비점수차를 줄일 수 있었다.
렌즈 설계자들은 곧 이 새로운 아크로맷 렌즈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주목할만한 사람은 1886년에 Zeiss에 합류한 수학자 Paul Rudolph(1858-1935)였다. Rudolph는 아나스티맷(Anastigmat)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아크로맷 전면 구성 요소와 새로운 아크로맷 후면 구성 요소로 구성된 일련의 렌즈를 설계했다. Dallmeyer의 Hugh Aldis는 도전을 받아들여 아나스티맷의 오래된 아크로맷 전면 구성요소의 접합 구조를 좁은 공극(air-space)으로 대체한 렌즈 그룹을 고안했다. 이에 뒤이어 Rudolph는 1899년 Unar - 두 구성 요소 모두에 공극이 있는 렌즈 - 와 1902년 그 유명한 Tessar를 개발한다. Tessar는 Unar의 공극이 있는 전면 구성 요소를 유지했지만 후면은 아나스티맷(당시 Protars라고 불림)의 새로운 아크로맷 접착 이중구조 렌즈로 교체했다. 렌즈의 수렴하는 힘(positive power)은 거의 모두 후방의 아크로맷 렌즈에 집중되어 있으며, 공극으로 배치된 전방 요소는 잔여 수차를 교정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초기 Tessar의 조리개는 f/6.3이었지만 추가 설계 작업으로 인해 1917년에 f/4.5, 1920년대에는 f/3.5 표준 렌즈와 f/2.7 속도 옵션으로 개선되었다.
최초의 롤라이플렉스가 등장했을 때 Zeiss는 이미 30년 이상 동안 세계 최고의 렌즈 제조업체로 명성을 누리던 시기였다. 따라서 Franke & Heidecke가 오리지널 롤라이플렉스의 f/4.5 및 f/3.8 테이킹 렌즈로 Zeiss를 고려한 것은 전혀 놀라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 시기의 f/3.8보다 더 빠른 조리개의 Tessar는 화질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만 적합하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인 1931년, Franke & Heidecke는 새로운 4X4용 카메라 용으로 설계된 Zeiss 60mm f/3.5 및 f/2.8 Tessar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 렌즈들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작업 자체가 더 쉬웠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오리지널 롤라이플렉스에 장착된 75mm Tessar의 경우 대각선 81mm 영역을 커버해야 했지만, 4X4에 사용된 60mm Tessar의 경우 이보다 훨씬 작은 대각선 56mm 영역 - 35mm 카메라에 더 많은 비율 - 만 커버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2년 후인 1933년, 가격대비 적당한 성능으로 인정받던 Zeiss의 Triotar 75mm 3요소 렌즈가 장착된 저렴한 버젼의 카메라 롤라이코드가 발매되었다. 이 3요소 렌즈는 한동안 고굴절률 크라운 유리를 사용하여 조리개를 f/6.3에서 f/3으로 개량할 수 있었다. 그러나 f/3 버전은 소프트한 결과물로 악명이 높았고 별도의 생산비용까지 추가되었기 때문에, Franke & Heidecke는 초기의 롤라이코드에 f/4.5 및 f/3.8의 조리개를 가진 Triotar로 만족하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essar는 다른 카테고리에 속했고, 1934년부터 '롤라이플렉스 올드 스탠다드'는 이전 f/3.8 및 f/4.5 버전 대신 75mm f/3.5 Tessar를 채택했다. 이는 Zeiss가 렌즈를 처음 광고한 지 6년이 지난 후였는데,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 롤라이플렉스 스탠다드 모델의 비용 상승에 대한 Franke & Heidecke의 우려로 인해 지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Zeiss에 대한 Franke & Heidecke의 신뢰는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당시 미군은 예나에 도착했지만, 점령군은 예나와 튀링겐의 나머지 지역을 소련이 통제하는 동부 지역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동의했다. 미국인들은 1945년 6월에 광학 및 유리 작업 관리 위원회, 100명이 넘는 과학자 및 기술자, 트럭 한 대 분량의 공장 기계 장비를 가지고 출발했다. 이때 미군과 함께 떠난 Carl Zeiss의 새로운 본사는 슈트트가르트와 뮌헨의 중간 정도에 있는 하이덴하임에 설립되었으며, 나중에 인근 마을인 오버코헨에 렌즈 공장을 설립했다.
예나에 있는 Zeiss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렌즈 공급원이 되지 못하였고, 서독의 Zeiss는 아직 렌즈를 생산하여 공급할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Franke & Heidecke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서쪽으로 70km 떨어진 바트크로이츠나흐에 위치한 유명한 렌즈 제조업자인 Josef Schneider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Schneider는 Ihagee의 127 롤 필름 Exaktas와 Kochmann의 Reflex-Korelles에 사용되었던 Tessar 유형 렌즈인 Xenar라고 하는 75mm f/3.5 렌즈를 생산하고 있었다. Xenar는 1946년 말쯤 롤라이플렉스 라인에 장착되기 시작했으며, 일련 번호가 2,700,000 범위인 전쟁시기의 Jena Tessar와 함께 사용되었다.
1947년에는 Schneider의 코팅된 Xenar 뿐만 아니라 예나에 있는 Zeiss 사업부에도 코팅된 Tessar가 도착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VEB Carl Zeiss Jena라는 국영 조직으로 재구성된다. 위의 두 렌즈는 1948년 롤라이플렉스 오토맷에 장착되었으며, 1949년 초 서독 Zeiss의 Zeiss-Opton Tessar가 새롭게 추가된다. 롤라이코드 II용으로 예정된 예나의 Zeiss Triotars도 1947년에 도착하기 시작하지만, 1948년까지는 코팅되지 않았다.
1951년부터 무게중심은 전적으로 Schneider Xenar와 Zeiss-Opton Tessar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2년에 이르러 f/3.5 Jena Tessar와 Triotar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이후부터는 어떤 f/3.5 Jena Tessar 또는 Triotar도 - 적어도 서구 유럽을 대상으로 한 - 롤라이 이안반사식 카메라에 다시 장착되는 일은 없었다.
Zeiss가 80mm f/2.8 렌즈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한 이후로, Franke & Heidecke는 f/2.8 테이킹 렌즈를 장착한 롤라이플렉스 6X6의 판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진행되었고, 1949년 롤라이플렉스 2.8A의 탄생으로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다. 생산 초기의 개체들은 예나에서 생산된 80mm f/2.8 Tessar가 장착되었으나, 곧 오버코헨에서 생산된 서독제 80mm f/2.8 Zeiss-Opton Tessar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두 렌즈 모두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대부분이 전문 사진작가였던 구매자들은 새로운 렌즈가 이전의 Tessar나 Xenar와는 달리 선명도가 떨어진다고 불평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기술로는 초점 거리보다, 길거나 대각선이 동일한 정방형의 영역을 커버하는 우수한 4요소 f/2.8 렌즈를 생산하는 것이 어려웠음을 말해준다.
한편 롤라이코드는 Schneider Xenar 75mm f/3.5 렌즈를 채택하여 롤라이코드가 단종되는 1977년까지 그대로 유지한다. 그리고 4X4 롤라이플렉스와 롤라이매직이 출시되었을 때에도 Xenar만 전적으로 채택되었으며, 롤라이매직의 경우 전면 셀 초점 기능이 있는 버전이 사용되었다. 1956년 이후에 만들어진 모델 중 오직 1958년의 롤라이플렉스 T에만 Tessar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희토류 유리를 사용하여 재계산(re-computed)된 설계로 오버코헨에서 만들어진 Carl Zeiss Tessar 75mm f/3.5 렌즈였다. 이후 1972년, 새로운 Tessar 역시 Xenar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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